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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쿠 도둑 일기(新宿泥棒日記, Diary of a Shinjuku Thief)는 오시마 나기사 감독이 1969년에 발표한 실험적 영화로 일본 뉴웨이브(누벨바그) 운동의 핵심에 위치한 작품이다. 1960년대 말 일본 사회의 불안과 저항, 문화적 급변을 예술적 언어로 담아낸 이 작품은 단순한 범죄물이나 멜로드라마가 아닌 의식의 분열과 젊은 세대의 갈등을 시적으로 그려낸 정신적 정치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오시마 감독은 당시 일본에서 금기시되던 정치적 주제와 성적 해방, 자본주의적 체제에 대한 비판을 독창적인 연출과 파격적인 구성으로 표현함으로써 영화의 전통적 문법을 철저히 부정하고 새로운 영화 언어를 구축했다.
1. 파괴된 내러티브와 흩어진 자아의 표출
신주쿠 도둑 일기의 줄거리는 명확하지 않다. 도서관에서 책을 훔치는 청년 오카와라와 그를 응시하고 도와주는 여인 시라이의 만남으로 시작되지만 사건은 일반적인 기승전결 구조를 따르지 않는다. 오시마는 이야기의 인과를 해체하며 플롯이 아닌 인물의 감정과 시대적 분위기를 중심으로 장면을 연결한다. 이는 누벨바그의 영향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1960년대 말 일본 사회의 혼란상과 정체성의 붕괴를 반영한다.
주인공 오카와라는 단지 책을 훔치는 범죄자가 아니다. 그는 체제에 저항하고자 하는 젊은 세대의 분열된 자아를 상징한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뚜렷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행위로만 그것을 표출한다. 책을 훔치는 행위는 단순한 도둑질이 아니라 지식과 권위에 대한 도전이며 문화적 제도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다. 시라이는 그런 그를 돕지만 동시에 지켜보는 존재로 머무른다. 이 두 인물의 관계는 명확하게 진전되기보다는 시대의 초상처럼 보여진다.
오시마는 여기서 영화라는 매체가 가지고 있는 서사의 일관성을 거부하고 파편적 이미지와 시, 즉흥적 대화, 실제 연극의 삽입 등 다양한 형식적 실험을 시도한다. 이로 인해 관객은 극중 인물에게 몰입하기보다는 계속해서 이것은 영화다라는 자각 속에서 작품을 바라보게 된다. 이러한 브레히트적 거리두기는 오카와라의 혼란과 동일시되며 이 시대 젊은이들의 정체성 붕괴와 비판적 의식을 반영한다.
2. 신주쿠라는 공간은 욕망과 저항의 교차점
영화의 배경인 신주쿠는 단지 장소가 아니라 1960년대 일본 젊은이들의 정신적 공간이다. 신주쿠는 당시 일본에서 가장 급변하던 상업 중심지이자 학생운동, 반전운동, 문화적 실험이 집중되던 장소였다. 신주쿠 도둑 일기에서 이 장소는 구체적 사건을 담는 무대가 아니라 젊은이들의 감정, 욕망, 혼돈이 충돌하는 상징적 공간으로 기능한다.
거리 곳곳에는 시위와 경찰, 정치 포스터와 네온사인이 뒤엉켜 있고 영화 속 인물들은 이곳을 자유롭게 떠돌지만 동시에 소외되어 있다. 신주쿠의 풍경은 무질서하면서도 역동적이며 이는 곧 인물들의 내면 상태와 일치한다. 오시마는 이 공간을 시적이고 다큐멘터리적인 방식으로 묘사함으로써 현실과 허구, 극영화와 논픽션의 경계를 허문다.
특히 영화 중반부에 등장하는 연극 장면은 관객 참여형 구조로 진행되며 현실 속 관객이 배우와 함께 감정을 토해내는 구조를 가진다. 이 연극은 단지 극 중 삽입된 연기 장면이 아니라 당시 일본 사회의 억압과 권력 구조를 고발하는 일종의 퍼포먼스이자 오카와라와 시라이의 관계, 나아가 개인과 체제 간의 충돌을 형상화한 메타포로 읽힌다. 이처럼 신주쿠는 단지 배경이 아닌 영화의 핵심 서사이자 철학의 장이다.
3. 젊음, 섹슈얼리티, 혁명등 억압을 깨뜨리는 장치들
오시마 감독의 영화에서 성은 단지 에로스의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억압된 정치적 감정과 체제에 대한 저항을 풀어내는 하나의 전략이다. 신주쿠 도둑 일기에서도 성적 장면들은 단순한 관계의 진전이 아닌 인간 존재의 근원적 욕망과 그 억압 구조를 드러내는 수단으로 작동한다. 오카와라와 시라이의 관계는 육체적 접촉을 통해 순간적으로 폭발하지만 곧 다시 서로를 낯설게 바라보는 지점으로 돌아간다. 이 반복은 섹슈얼리티가 관계의 통합이 아니라 분열과 긴장의 상태임을 시사한다.
이러한 성적 해방은 당시 일본 사회의 검열 체제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다. 오시마는 성을 검열과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만들지 않고 그것이 인간의 감정과 권력 관계를 어떻게 전복할 수 있는지를 실험한다. 이로써 그는 섹스를 통해 혁명을 말하고 욕망을 통해 정치적 저항을 외친다. 이는 단순한 도발이 아니라 영화 자체가 하나의 해방 운동이라는 오시마의 영화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또한 영화 속 인물들은 자기 자신을 찾지 못한 채 부유하며 정체성은 불안정하고 혼란스럽다. 이는 당시 68혁명 전후 일본의 청년 세대가 직면한 문제를 그대로 반영한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하는지조차 명확하지 않은 이 젊은이들의 모습은 비단 일본만의 상황이 아닌 세계적인 시대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오시마는 이 보편적 불안과 욕망을 영화의 언어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이 영화는 저항의 언어의 표현이다
신주쿠 도둑 일기는 줄거리도, 결론도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오시마가 말하고자 하는 방식이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누구이며, 왜 이렇게 불안한가?, 권위와 지식, 체제는 과연 우리를 위한 것인가?, 저항은 어떻게 가능한가?
영화의 파편화된 구조, 실험적 시각 이미지, 연극적 장치, 성과 정치의 결합은 모두 영화라는 매체를 기존의 규율에서 해방시키고자 하는 시도이며 그것은 결국 현실 세계의 권력 관계를 깨뜨리고자 하는 저항의 언어로 기능한다. 오시마는 신주쿠 도둑 일기를 통해 단지 한 청년의 일기를 쓴 것이 아니라 1960년대 일본 청년 전체의 내면을 기록했다.
이 영화는 지금 봐도 여전히 불편하고 해석이 어려우며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그러나 바로 그 점에서 진정한 예술적 급진성과 저항정신이 살아 숨 쉬고 있다. 신주쿠 도둑 일기는 단지 시대의 산물이 아니라 모든 억압과 감시 속에서 질문을 멈추지 않는 자들에게 바치는 선언이다.